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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회랑/대인물

[대인물] 3장, 카나리아와 고양이 떼

by 와룡씨 2007. 9. 13.

대인물 - 고룡

카나리아와 고양이 떼(金絲雀和一群貓)

(1)

“이걸 안 가져가면, 설마하니 나더러 더러운 남자들이 쓰던 이불에, 남자들이 쓰던 그릇을 쓰라는 거니?”

전사사가 말하자 전심은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아가씨께서 다른 사람들이 쓰던 걸 쓰기 싫으시다면야, 가는 길에 새걸로 사면 되잖아요.”

“파는 것도 더럽단 말이야.”

“이것들도 다 밖에서 사온 거잖아요.”

전사사는 입을 삐죽거렸다.

“몰라. 어쨌든 다 가져가야만 하겠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아님...”

전심이 한숨을 내쉬며 전사사 대신 말을 이었다.

“아니면 날 왕대광에게 시집보내겠다 이거죠?”

그리곤 눈동자를 굴리며 킥킥 웃었다.

“늘 나더러 입 삐죽이라고 놀리더니, 아가씨 입이 더 많이 튀어나왔군요.”

전사사가 원하는 것이라면 가져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타당한 이유를 댄다한들 그녀는 코웃음밖에 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화를 냈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 그 일을 잊어버리곤 화를 냈던 상대의 손을 잡곤 했다. 이것이 바로 전대소저의 성깔이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전대소저는 그간 쓰던 세숫비누와 분합, 거울, 이불, 베개, 향로, 바둑판을 비롯해 남들은 생각지도 못할 이런저런 물건들을 모두 싸 가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이것은 그녀의 첫 번째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강남이었다. 그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세 명의 대인물이 모두 강남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은 대체 어떤 곳일까?

그녀의 집에서 얼마나 먼 곳일까?

강남까지 가는 길에 어떤 곳을 지나게 될까?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뜻밖의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까?

정말 강남까지 갈 수는 있을까?

강남에 도착한다한들, 과연 그녀가 바라는 세 명의 대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대인물들은 그녀를 어떻게 대할까?

이런 갖가지 문제들을 전대소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마차에 올라 눈을 감았다 뜨면 평안무사하게 강남에 도착할 것이며, 세 명의 대인물이 나와 반겨주리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강남이 집 후원처럼 안전하며, 강남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하인들처럼 말도 잘 듣고 친절할 것이라 여겼다.

이런 아가씨가 강호에 나서겠다니, 그야말로 위험한 일이 아닐까?

정말 그녀가 무사히 강남에 도착한다면, 그거야 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번 여행길에서 그녀가 겪은 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다. 하나씩 열거하는 데만도 2,3년은 걸리리라.

(2)

드문드문한 별빛 사이로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밤바람은 따스하면서도 건조했다. 중원(中原)다운 좋은 날씨였다.

마차의 창문을 여니, 길가의 나무들이 나는 듯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마차가 무척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전사사는 마치 십여 년이나 갇혀있다 막 새장에서 풀려난 카나리아처럼, 멀리 그리고 빨리 날아가고 있었다.

창 밖에서 바람에 불어와 그녀의 몸을 쓸어갔다. 흥분으로 몸이 근질근질한 그녀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하늘에 떠오른 차갑고 둥근 달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마치 달을 처음 본 사람 같았다.

“저것 좀 봐, 달이 정말 예쁘지 않니?”

“그래요, 정말 예쁘네요.”

“강남의 달은 이것보다 더 예쁘겠지. 훨씬 더 둥글지도 몰라.”

전심이 눈을 깜빡였다.

“강남의 달도 여기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전사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넌 정말이지 시심(詩心)이라곤 전혀 없구나.”

전심은 창밖에 내린 밤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시는 몰라도 책을 한 번 쓰고 싶긴 해요.”

“책? 무슨 책 말이야?”

“서유기(西游記)같은 이야기책이요. 벌써 제목도 정했어요.”

전사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입 삐죽이 낭자께 그런 재주가 있을 줄이야. 좋아, 어떤 제목인지 말해보렴.”

“대소저(大小姐) 남유기(南游記)예요.”

“대소저 남유기? 서.. 설마 내 얘기야?”

“맞았어요. 대소저는 바로 아가씨예요. 그리고 남유기라는 것은 우리가 이번 여행길에 겪을 일들을 말하는 거죠.”

전심의 얼굴이 흥분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생각해봐요. 이번 여행길에 우린 틀림없이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거예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도 생기겠죠. 그걸 하나씩 써 놨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재미있어 하겠어요.”

전사사도 흥미가 생겼는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정말 쓸 수 있다면 한 번 해 봐. 나중엔 서유기보다 더 유명해질지도 몰라.”

그리곤 갑자기 정색을 하며 덧붙였다.

“그렇지만 절대 진짜 이름을 밝혀선 안돼. 아버지께서 보시면 화를 내실거야.”

전심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 어떤 이름을 쓰죠...? 서유기는 당나라 스님에 관한 글인데 그렇다고 아가씨를 비구니로 만들 순 없고...”

전사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스님이면 넌 손오공이고, 내가 비구니라면 넌 암원숭이야.”

그리곤 킥킥 웃으며 말했다.

“원숭이도 입을 삐죽거리잖아.”

전심은 과연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손오공은 상관없지만 스님은 조심해야 해요.”

“뭘 조심해?”

“다른 사람들이 스님이 고기를 먹겠다고 덤빌 테니까요.”

전사사는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벌떡 일어났지만, 다시 자리에 앉으며 눈을 찡그렸다.

“이런, 큰일 났어.”

전심도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예요?”

전사사는 얼굴을 붉히며 전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금 전에 차를 너무 마셨나봐. 볼일이 보고 싶어 죽겠어.”

전심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도 없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그럼 어쩌죠? 마차에서 볼 일을 볼 수는 없고...”

“큰 걸 잊었지 뭐야. 요강도 가져왔어야 했는데.”

전심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허리마저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전사사는 화를 내며 말했다.

“뭐가 우습다는 거야. 넌 한번도 급한 적이 없었니?”

물론 전심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 그 기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조용히 말했다.

“마부에게 잠시 세워달라고 해요.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날도 어두우니까 저쪽 나무 뒤에서....”

전사사가 전심을 찰싹 때리며 말을 끊었다.

“못된 계집애, 그러다 누가 오면 어떡해?”

“걱정 마세요, 제가 망을 봐 드릴게요.”

전사사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 절대로 안돼. 뭐라고 해도 그렇겐 못해.”

전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방법이 없어요. 꾹 참는 수밖에요.”

전사사는 벌써 참느라 얼굴마저 시뻘겋게 된 상태였다.

이럴 때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생각하면 할수록 급해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전사사가 소리를 질렀다.

“마부, 잠깐 멈춰요!”

전심은 입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우리 대소저께서도 결심을 바꿀 때가 있네요.”

전사사는 그녀를 한번 노려본 후 입을 열었다.

“마부에게 시킬 게 있어.”

“뭔데요?”

전사사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도대체가 어린애들이란 어른처럼 주도면밀하게 일을 못한다니까.”

마차가 멈추자 그녀는 서둘러 마차에서 내려 큰 소리로 외쳤다.

“마부, 이쪽으로 와요. 할 말이 있어요.”

마부는 느릿느릿 마차에서 내려 느릿느릿 걸어왔다. 그야 말로 멍청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전사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워낙 비밀스럽게 처리해야할 문제인지라 마부가 멍청할수록 좋았던 것이다. 멍청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정확히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분명 영특하고 주도면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 우리를 알아요? 우리가 누군지 알아요?”

마부는 눈을 똑바로 뜬 채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모릅니다.”

“방금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나요?”

“바보도 아닌데 어떻게 그걸 모릅니까요.”

전사사는 조금 긴장한 투로 물었다.

“알고 있어요?”

“물론이지요. 바로 문에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까요.”

전사사는 속으로 안도하며 다시 물었다.

“그게 누구네 집 문인지 알아요?”

“모르죠.”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세요?”

“모릅니다요.”

전사사는 눈동자를 굴리며 서 있다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마부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두 분이 여자라면 전 마누라가 되게요?”

전사사도 웃었다. 무척이나 만족한 것이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요. 그냥 가면 안돼요.”

마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차 삯도 안 치르셨으니 죽인다고 해도 그냥 갈 수야 없죠.”

전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냥 가면 삯을 놓칠 것이요, 가지 않으면 상을 받는 거예요.”

마부는 허리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땅에 문질러 불을 붙였다. 전사사는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마음을 놓고 나자 다시 그 일이 떠올랐다. 한 번 떠올리자 잠시도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심을 끌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그리 어둡지 않았지만, 사람은커녕 귀신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전심이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하세요. 마차를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더 멀리 가면 안돼요.”

“여기선 안 돼. 저 마부는 바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사람들은 어두운 곳일수록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약점이었다.

전사사는 가장 어두운 곳을 찾은 후 조용히 말했다.

“잘 보고 있다가 누구든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

전심은 대답 없이 킥킥 웃기만 했다. 전사사가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외쳤다.

“요 계집애, 웃긴 왜 웃어! 볼 일 보는 걸 처음 봐?”

전심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 때문에 웃은 게 아니에요. 이곳엔 사람이 없긴 하지만 뱀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전사사는 펄쩍 뛰었다. 깜짝 놀라 얼굴까지 하얗게 질린 그녀는 뭐든 찾아서 전심의 입을 막으려 들었다. 전심은 용서를 빌었지만 전사사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이 웃고 떠들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숲 밖의 마차 소리며 말발굽 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일을 다 치른 후 두 사람이 숲에서 나와 보니, 마차를 몰던 ‘바보’ 마부는 물론이고 마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사사는 당황했다. 전심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전심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자가 바보라고만 생각했지, 우리가 바보취급 당하는 건 전혀 몰랐군요. 우린 진짜 바보였고, 그 자는 거짓으로 멍청한 척 했던 거예요.”

전사사는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나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쨌든 절대 집에 돌아가진 않아.”

전사사는 이렇게 말한 후 다시 전심에게 물었다.

“내 머리 장식들 가져왔어?”

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사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그 보따리를 마차에서 가져왔으면 좋았을걸.”

갑자기 전심이 등 뒤에서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자, 이게 뭘까요?”

전사사는 기뻐서 팔짝 뛰었다.

“계집애, 난 네가 약삭빠르다는 걸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

그러나 전심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가 어린애들이란 어른처럼 제대로 일처리를 못한다니까.”

길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별도 있고 달도 있었다.

두 사람은 유유자적 길을 걸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미친 듯 화를 내던 것도 잊은 후였다.

전사사가 웃으며 말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어.”

전심이 눈을 깜빡였다.

“더러운 남자들이 쓰던 이불을 덮어도 좋아요?”

“뭐 어때. 새것으로 사면되지. 내 침상 위의 이불도 밖에서 사온 거잖아.”

전심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대소저께선 성깔이 괴팍하시긴 하지만, 무척 대범하시군요. 다만 건망증이 조금 있는 게 문제죠. 방금 자신이 한 말조차 돌아서면 잊어버리시니...”

전사사는 그녀를 흘겨본 후 살짝 눈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이상해.”

“뭐가요?”

“그 마부 말이야. 삯도 받지 않고 왜 그냥 가버렸을까?”

전심도 잠깐 당황한 듯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게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갑자기 전사사가 손을 ‘짝’하고 마주쳤다.

“이런 바보. 그 자는 마차에 있는 우리 물건들이 매우 값진 것이란 걸 알았던 거야. 마차를 하나 사고도 남을 정도지.”

“아하, 아가씬 정말 천재로군요.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생각해 내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대소저는 과연 대소저였다.

대소저의 생각은 때때로 사람들을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콧물까지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3)

날이 밝았다.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전사사가 조용히 말했다.

“이상해. 왜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날까?”

“배가 고프면 그런 소리가 나는 거예요.” 전심이 말했다.

“왜 배가 고프면 이런 소리가 나?”

전심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소저란 종종 대답할 말이 없는 질문을 하곤 한다.

전사사는 한숨을 쉬었다.

“배고픈 게 이렇게 참기 힘들 줄은 몰랐어.”

“한번도 배고픈 적이 없었어요?” 전심이 물었다.

“가끔 점심이 먹기 싫어서 안 먹고 나면 오후쯤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 되긴 했었어. 그렇지만 이제 보니 그 정도는 절대 배고픈 게 아니었어.”

전심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그 어떤 느낌이든 모두 맛봐야만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배고픈 느낌은 이걸로 충분해. 이젠 커다랗고 때깔이 좋은 고기를 약한 불에 살짝 구워 부드럽게 만든 홍소육을 먹고 싶어.”

“그럼 그만 집으로 돌아가서 먹어요.”

“밖엔 홍소육도 없어?”

“최소한 지금은 없어요. 아직 음식점이 문을 열 때가 아니라고요.”

전심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 찻집은 아침 일찍 문을 열기도 한다던데. 음식도 판다고 하더군요. 그런 찻집이라면 아마 채소 시장 근처에 있을 거예요.”

전사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잘 됐어. 그렇잖아도 채소 시장을 구경하고 싶었거든. 더구나 찻집이라니, 강호의 일은 대부분 찻집에서 일어난다고 하잖아.”

“맞아요. 그런 곳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죠. 사기꾼도 무척 많구요.”

전사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주의만 하고 있으면 누가 우릴 속이겠니? 사기꾼 곁에 가지만 않으면 되잖아.”

이 지방에도 역시 채소 시장이 있었다. 채소 시장 옆에는 과연 찻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부랑자와 사기꾼 역시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돼지고기는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겨 나왔고, 칼국수이 면은 두께가 한 치 정도나 되었다. 탕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돼지고기 한 그릇이 대여섯 냥 정도 될 것 같았다.

이런 곳의 음식은 주로 경제적이고 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음식의 맛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 대소저는 이런 국수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오늘은 단숨에 한 그릇을 비우고, 고기마저도 깨끗이 처리해버렸다.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던 전심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그릇이랑 젓가락 모두 더러운 남자들이 쓰던 건데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세요?”

전사사는 잠깐 당황하더니 실소를 터트렸다.

“잊어버렸어. 배가 고프면 뭐든 다 잊어버리게 되는 구나.”

그러더니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게 물었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아뇨, 괜찮은데요.”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자꾸 날 쳐다보지?”

“혹시 딸을 위해 사윗감을 고르려고 하는지도 모르죠.” 전심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줄곧 보따리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국수를 먹을 때조차 놓지 않을 정도였다.

갑자기 전사사가 말했다.

“그 보따리를 탁자 위에 내려 놔.”

“왜요?”

“밖에 나와선 절대 돈이 있다는 걸 티내면 안돼. 그렇게 꽉 쥐고 있으면 모두들 그 속에 값나가는 물건이 들어있다고 생각할거야. 괜히 주의를 끌 필요 없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거야.”

전심은 입을 삐죽이며 웃음을 지었다.

“뜻밖에도 아가씨께선 강호를 잘 아시는군요.”

“누가 아가씨야?” 전사사가 눈을 흘겼다.

“예, 도련님.”

그녀는 곧 보따리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때 누군가가 걸어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모았다.

“안녕하시오.”

이 사람은 생김새가 별로 잘나지 않았다. 사슴처럼 길쭉한 얼굴에 쥐처럼 작은 눈을 하고 있어서 척 봐도 나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전사사는 그를 무시하려 했지만, ‘노강호(老江湖)’다운 풍격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일어나서 손을 모았다.

“안녕하십니까.”

뜻밖에도 그 사람이 탁자 앞에 앉더니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두 분께선 이곳에 처음 오신 모양이구려?”

“몇 번 왔었죠. 이 성안에 뭐가 있는지 무척 잘 알고 있어요.”

“노형게서 그토록 여행을 즐긴다면, 틀림없이 성안에 사는 조노대(趙老大) 조대형을 아시겠구려?”

그 말투를 듣자니 조대형이라는 사람은 성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노강호답지 않은 일이었다.

전사사가 대답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이 식사를 한 적이 몇 번 있지요.”

상대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시다면 우리 모두 한 집안 사람이겠구려. 저는 철각박(鐵胳膊)이라고 하는 조노대의 아우요.”

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한 집안 사람이니 말하지 않을 수 없겠구려.”

“무슨 말씀이신지?”

“이 곳은 워낙 복잡한 곳이라 온갖 나쁜 사람이 다 있소. 두 분의 보따리 속에 귀한 물건이 있다면 특히 조심하시오.”

전심이 얼른 손을 뻗어 보따리를 꽉 쥐었다. 전사사는 그녀를 한번 흘겨보곤 담담한 투로 말했다.

“이 보따리엔 갈아입을 옷 몇 벌이 들어있을 뿐입니다. 별로 조심할 필요도 없지요.”

철각박은 빙긋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의로 말해드린 것이니 두 분께서는...”

그 순간, 그는 보따리를 뺏어들고 재빨리 달아났다.

전사사는 냉소를 터트렸다. 그 자의 경공으로 보아하니 50척 정도 달아나게 내버려두어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소저는 결코 바람에 날려갈 듯 연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한번은 금수산장의 무도장에서 서네번 만에 가장 이름 있는 표두(鏢頭)를 쓰러뜨린 적도 있었다. 그 표두는 전대소저의 무공이 강호의 일류 고수에 속하며,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여협인 ‘옥란화(玉蘭花)’조차 따라올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대소저는 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철각박이 채 문을 나서기도 전에 위풍당당한 몸집을 하고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대한이 그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대한은 철각박의 뺨을 올려붙이며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쓸모없는 놈, 어서 그 물건을 돌려주어라.”

철각박은 그에게 항거하기는커녕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순순히 보따리를 돌려주었다.

대한이 성큼성큼 걸어와 포권을 취했다.

“나는 조(趙)가라 하오. 이 놈은 아우인데 요 이톨 배가 고프다보니 이런 잘못을 저질렀구려. 두 분이 벌하시겠다면 원하시는 대로 하시오.”

전사사가 살펴보니, 이 사람은 강호인 다운 의기며 기개가 있어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펴며 빙긋 웃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니 이만 됐습니다. 노형께서도 신경쓰지 마세요.”

대한은 철각박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어서 두 분 공자께 감사드리지 않고 뭘 하느냐.”

문득 전사사가 물었다.

“노형께서 조가라고 하셨는데 혹시 성안의 조대형이 아니신지요?”

“이거 부끄럽소.”

“크신 이름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자, 여기 좀 앉으시지요.”

조노대는 손을 휘저었다.

“여기 음식들은 내가 계산하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내야지요.”

그녀는 보따리를 열고 은자를 꺼내 계산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잡힌 것은 진주가 가득 박힌 나비 모양 보석이었다. - 이 보따리에는 처음부터 은자라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조노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런 것으로는 값을 치를 수가 없소. 형제께서 은자가 필요하다면 내가 바꿔드리겠소. 물론 값은 공정하게 치를 것이오.”

그는 제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허풍이 아니라, 이 성안에 있는 사람 중에 조노대의 친구를 속이는 자는 아무도 없소.”

전사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승낙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때, 장삼에다 검을 찬 중년인이 들어오더니 조노대를 향해 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 봐, 칼자국. 또 내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조노대는 벌떡 일어나 웃으며 몸을 굽혔다.

“제가 어찌 감히... 조나리, 그럼 안녕히...”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전사사는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장삼에 검을 찬 중년인이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모았다.

“본인의 성은 조이며 이름은 노달(勞達)이라 하오. 성 안 친구들이 은혜를 베풀어 노대라고 칭해주지만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오.”

전사사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이 사람이 진짜 조노대이며, 방금은 가짜였던 것이다.

조노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칼자국은 성안에서 유명한 사기꾼이오. 항상 내 이름을 팔아 밖에서 사기를 치곤 한다오. 두 분도 그만 속아 넘어갈 뻔 하셨소.”

전사사는 얼굴을 붉혔다.

“그렇지만 방금 다른 사람이 훔쳤던 제 보따리를 찾아서 돌려주었어요.”

조노대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그 철각박도 한통속이오. 연극을 꾸며 두 분의 신임을 얻으려고 한 것이라오. 그래야 손쓰기가 쉬울 테니까.”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모두 눈치 챘겠지만, 두 분은 눈빛이 맑으니 필경 솜씨도 좋을 것이오. 철각박같은 자가 무슨 수로 두 분의 손아귀에서 달아날 수 있겠소?”

전사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야 말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는 옛 말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어쨌든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 물었다.

“제가 무공을 배웠다는 걸 아셨습니까?”

조노대가 웃으며 말했다.

“무공을 배운 정도가 아니라 틀림없이 고수일 것이오. 그래서 본인은 두 분과 친구가 되고 싶어 이 번잡스러운 일에 나선 것이라오.”

전사사는 무척 즐거웠다. 집을 나오자마자 강호의 호한과 친구가 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녀는 즉시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자자, 앉으시지요. 앉아서 얘기합시다.”

“여긴 복잡해서 이야기할 곳이 못 되오.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소?”

조노대의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여러 집이 모여 사는 정원에 작은 방 두 칸이 다였다. 방안도 매우 간소하여 입고 있는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전사사는 이상하게 생각하긴커녕 매우 당연하게 여겼다. 조노대같은 강호의 호한은 은자가 생기면 친구에게 주어버리고 자신을 위해 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사람이니 당연히 가족이 있을리도 없었다.

조노대가 말했다.

“두 분께 특히 중요한 일이 없다면, 여기서 한 이틀 정도만 머무르시오. 내 성안의 친구들을불러다 인사를 시켜 드리겠소.”

전사사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 잘 되었군요. 소제가 이번에 나선 것도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심이 참다 못해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랬다간 조나리를 너무 귀찮게 해드리지 않을까요?”

전사사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조대형같은 분 앞에서 너무 격식을 차리는 건 오히려 그 분을 욕보이는 셈이야.”

조노대가 손을 비비며 웃었다.

“옳소. 노형께선 과연 호방하시구려. 내 형제가 되기에 결코 모자라지 않소이다.”

‘호방’하다느니, ‘형제’라느니 하는 말에 전사사는 뛸 듯이 기뻤다. 조노대 같은 사람도 자신이 남장여자라는 것을 몰라보니 그 누가 알아차리겠는가? 그녀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자신이야말로 강호의 기재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분장했는데도 이토록 감쪽같을 수가 있겠는가?

조노대가 다시 말했다.

“형제, 필요한 게 있다면 거리낌 없이 말하게. 그렇지, 일단 은자를 좀 주겠네. 은자가 있어야 사용하기도 편할 테니까.”

“아닙니다. 제 머리장식들이...”

말하다말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얼른 정정했다.

“동생의 머리장식들 말입니다. 이걸 은자로 바꾸면 됩니다.”

조노대가 정색했다.

“형제, 그러면 안 되지. 방금 격식을 차리지 않기로 해놓고 어찌 그러시나. 가서 은자로 술을 좀 사 올 테니 기다리게. 갔다 와서 실컷 마셔 보자구.”

그는 전사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걸어 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품에서 열쇠를 꺼내 침상 옆에 있는 궤짝을 열었다.

“그 귀중한 물건들을 계속 몸에 지니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은가. 이 궤짝 안에다 넣어두면 남들 눈에 띄지도 않을 걸세. 조심하는 게 좋으니 말이야.”

정말이지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궤짝에 보따리를 넣은 후, 그는 전심에게 열쇠를 주며 빙긋 웃었다.

“이 분 총관께선 무척 세심한 것 같으니 직접 열쇠를 보관하시게.”

전사사는 민망하게 여겼지만 전심은 서둘러 열쇠를 받아 챙겼다.

조노대가 나가기 무섭게 전심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 조노대란 사람도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요?”

전사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의심이 많구나. 자기 집을 내주고 은자까지 주겠다는데 그보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만 보따리는...”

“보따리는 궤짝에 들었고 열쇠는 네가 가지고 있잖니. 그래도 안심이 안돼?”

전심은 입을 삐죽이며 더 말하지 않았다. 전사사는 그녀를 내버려둔 채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갔다.

이 정원에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대나무에 갖가지 형색의 옷이 걸려 있었는데 새 옷은 한 벌도 없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다지 훌륭한 살림을 하지는 못하는 듯 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몇 명이 정원에 나와 석쇠(石鎖:돌로 만든 운동기구)를 던지거나 공중제비를 넘고 있었다. 그 중 두 사람은 머리를 땋은 여자였다. 전사사는 이들이 강호인이며 지금 무예를 연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쪽에는 애꾸눈을 한 노인이 앉아 호금(胡琴)을 타고 있었다. 한 처녀가 그 옆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상사두(相思豆:남천축의 열매)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당연히 이 노인은 기예를 파는 사람이었다.

처녀가 들고 있는 상사두로 보아 춘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혹시 연인이 남모래 가져다 준 건 아닐까? 전사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처녀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눈을 흘기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상사두를 품 안에 숨겼다.

‘혹시 내게 마음이 있는 건가? 자신에게 연인이 있다는 걸 내가 눈치챌까봐 상사두를 숨긴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전사사는 더는 그쪽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정원에는 코를 줄줄 흘리는 어린애들이 진흙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 배가 부른 젊은 부인네가 그 옆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눈이 새빨간데다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배 크기를 보아하니 8,9개월은 된 것 같았다. 곧이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 부인의 시어머니는 옆에서 며느리가 게으르다고 잔소리하면서도, 수건으로 대신 땀을 닦아주었다. 전사사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인생이라고 느껴진 것이다.

그녀는 한번도 인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문득 배부른 젊은 부인네가 무척이나 부러워졌다. 그녀에게는 보석도 없고 머리 장식도 없으며, 경성에서 가져온 분첩도 은자 다섯 냥 짜리 비단 치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겐 자신만의 삶이 있었다. 사랑이 있고 또 그 생명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늘 후원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에겐 구름이 지나는 것이며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겠지. 그렇지만 그건 새장 속에 갇힌 카나리아나 다를 게 무엇일까?’

전사사는 탄식하며 자신이 왜 일찍 그 새장에서 뛰쳐나오지 않았나 후회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실컷 인생이라는 것을 즐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불이 붙었고 솥의 밥이 익기 시작했다.

호금소리가 멈췄다. 금을 타던 노인은 담배를 피고 있었고 처녀는 그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갑자기 전심이 뛰어나와 전사사에게 속삭였다.

“조노대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죠?”

“일이 쉽지 않았겠지. 여기저기서 은자를 마련해야 하니까.”

“도망가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우리 돈을 훔쳐가지도 않았는데 왜 도망을 치겠어?” 전사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전심은 다시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솥에 있던 밥이 익으면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검은 경장을 한 청년을 불러들였다. 온 몸에 땀이 흐르는 걸로 보아 방금까지 힘든 일을 하고 온 듯 했다.

배가 부른 부인네가 얼른 그를 맞아들이며 땀을 닦아 주었다. 청년이 가볍게 부인의 배를 두드리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부인네는 살짝 눈을 흘기더니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개 두 마리가 정원에서 똥을 먹고 있었다. 진흙투성이로 놀던 아이들은 엄마의 부름에 달려가 엉덩이를 맞았다.

그래도 조노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사사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전심이 방에서 뛰어나왔다. 그녀는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마냥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큰일, 큰일났어요...”

전사사는 눈을 찡그렸다.

“뭐가 그렇게 큰일이야? 너도 볼일이 급해진 건 아니겠지? 이곳엔 화장실이 있다구.”

“아니, 아니예요... 우리 보따리가...”

“보따리는 궤짝 안에 있잖아?”

전심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궤짝은 텅 비어있었어요. 아무것도 없다구요.”

“바보 같은 소리 마. 내가 분명 그 안에다 넣었잖아.”

“그야 그렇지만 없는걸요. 아무래도 맘이 놓이지 않아 열어봤더니...”

전사사도 다급한 마음에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과연 궤짝은 비어 있었다.

보따리는 어디로 갔을까? 제 스스로 날개가 솟아 날아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전심이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 궤짝은 3면 밖에 없어서 벽 쪽은 뚫려 있었어요. 조노대는 분명 밖에서 보따리를 훔쳐 달아난 거예요. 그 자가 나쁜 사람인 줄 난 벌써 알고 있었다구요.”

전사사는 발을 구르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식사하러 방에 들어갔고, 석쇠를 던지던 청년들만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전사사는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조노대는 어디 있죠?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시오?”

청년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노대가 누구죠? 모르는 사람인데요.”

“저 쪽 방에 사는 사람 말이에요. 이웃이면서 모른단 말이에요?”